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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by 홈프로텍터누르미 202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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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대한제국의 성립된 배경을 먼저 보면,

대한제국은 19세기 후반에 조선이 내부적인 갈등과 외세의 침략에 의해 혼란한 시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세도 정치가 부채하고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으며, 갑오개혁 등의 사회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등 열강들이 조선을 둘러싸고 영향력을 다투었습니다.

이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이 감소하였고, 러일전쟁에서는 일본이 다시 승리하여 영향력 또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후를 대한제국의 수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을 가는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아관파천이라 하는데 이후 조선이 독립국임을 내외에 선언하고 1897년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을 선포하였습니다.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은 황제에게 즉위하였습니다. 이는 명실상부한 자주 국가로 인정받고자 함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의 개혁 노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종은 자강을 목표로 하여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이를 광무개혁이라고 합니다.

광무개혁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다양한 개혁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먼저 시위대를 창설하고 군제를 정비하여 근대적인 군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광산을 개발하고 철도를 건설하였습니다. 이때 건설된 철도가 경인선, 경부선 등이 있습니다. 이어 민간 기업들을 육성하여 산업 진흥 정책에도 열을 올렸습니다.

더불어 중앙과 지방의 모든 행정을 개편하고 근대적인 토지 조사를 통해 근대적인 행정 제도를 수립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육령을 제정하고 기술학교 등을 설립하는 등 근대적인 교육제도 또한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강의 간섭과 재정의 부족, 보수 세력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대 이어 대한제국이 몰락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1895년 일본 낭인들이 침략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확립하였습니다. 1905년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하며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하였습니다. 이를 을사늑약이라 합니다. 1907년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려 했으나 실패하며 고정은 강제로 퇴임과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1910년 국권은 피탈되고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한일병합조약이 맺어졌습니다. 



이어 일제강점기를 알아보겠습니다. (1901년~1945년)



3가지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무단통치 시기, 문화통치 시기, 민족 말살 시기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무단 통치기는 1901년~1919년입니다. 헌병 경찰제를 만들어 군사경찰이 민간을 무력으로 통제하며, 언론과 출판, 결사의 자유를 금지했습니다.. 또한 토지 소유권을 일본식으로 등록하여 많은 농민이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토지 조사 사업도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교육과 직업, 사회적인 기회에서 한국인을 차별하고 일본인을 우선시하여 모든 권리를 다 앗아갔습니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납니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벌어진 비폭력적 독립운동입니다. 학생, 지식인, 종교인, 농민 등 계층을 막론하고 참여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비폭력적인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일본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약 7,500명 이상이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국제 사회도 조선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후 1919년~1931년 일본은 이전보다는 유화적인 통치로 전략을 바꾼 듯 합니다.

총독부 제도는 유지하되, 민간인을 총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일부 언론, 출판 등도 허용하였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 시기 창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중심의 역사와 언어를 교육하며 교육을 확대해 갔고, 실질적으로는 조선에 대해 통제를 유지하고 민족운동 억압은 지속되었습니다.



1919년 상하이에서 김구, 이승만 등이 주도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1920년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에서 홍범도 김좌진 장군들이 주도하여 무장 독립 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일본군이 독립군을 토벌하며 민간인을 학살하는 간도 참변도 일어났습니다.

이 당시 의열단 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김원봉이 조직하였으며, 일본 고관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등의 저항이 계속됐습니다.



이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은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시작합니다. 조선을 일본화하려는 강력한 동화정책인 황국신민화 정책을 펼쳤으며,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압적으로 바꾸게 하는 일본식 성명 강요도 이때 시작되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조선어와 한글을 금지하고, 노동자와 군인으로 강제 징용하며 여성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일제 강점이 말기에는 1941년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의 전쟁이 격화되며 우리나라의 자원과 인력을 극한으로 착취해 갔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며 조선과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대한제국은 (1897~1910) 자주 국가의 수립을 시도하였고, 근대화 개혁을 하였습니다. 주로 고종 황제와 개혁 관료들이 함께했습니다. 주요 사건들로는 광무개혁, 을사늑약, 국권 피탈 등이 있고, 결과적으로는 주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1901~1945) 식민지로 지배당하고 저항과 억압의 시대였습니다. 일본 제국 구의 정부 즉 총독부가 주도하였으며, 주요 사건들로는 3.1운동, 임시정부, 무장 독립운동, 강제 동원 등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해방되고 분단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인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권리를 완전히 상실하고, 독립운동을 끊임없이 벌였습니다. 그 투쟁의 결과가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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